따뜻한 차를 많이 마셔도 낫지 않는 목 감기! 빨리 나을 수 있는 방법은? 의사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의사 상담받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때 문창살을 보고 만든건가요?
| 03.10.01 09:28
답변 8 조회 3,250
네티즌공감
질문 내용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때 문창살을 보고 만든건가요?

전 오늘 첨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을 등록하시면 마일리지 3점, 채택되면 30점을 더 드립니다.


 
답변
님의 답변
03.10.01 09:56
답변공감
답변 내용
물론 한글이 문창상과 비슷한 문야이 있기는 하지만
한글은 당시 최고의 언어학과 문자학, 인문학, 해부학이 접목된
인류 역사상 문자를 새로 만드는 최대의 작업이었습니다.

이미 밝혀진 바로도 세종대왕은 엄청난 학식과 함께
언어학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임금이었습니다.
당시 발음기호과 우리언어의 표기를 위해 고심했던
흔적이 자료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자음의 경우 해부학을 바탕으로 혀와 입이 자음을
소리 낼 때 위치와 모양을 분석하여 문자화한 것입니다.

먼저 <<ㄱ>>은 입안에서 혀가 <<ㄱ>>의 음을 낼 때
모양을 분석하여 만들었습니다. 해보세요 혀가 <<ㄱ>>처럼
굽었다는 걸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이걸 기초로 해서
센소리는 <<ㅋ>>으로 된소리는 <<ㄲ>>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ㄴ>> 또한 혀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혀의
위치가 비슷한 <<ㄷ>>과 <<ㄹ>>을 파생 문자로 만들고
<<ㅌ>>과 <<ㄸ>>을 첨가하였지요..

<<ㅁ>>은 입의 모양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위로 퍼지며 나는
소리를 <<ㅂ>>으로 옆으로 퍼지며 나는 소리를 <<ㅍ>>으로
표기하였습니다.

<<ㅅ>>은 소리가 나는 위치가 이라서 이의 모양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잇소리가 나는 <<ㅈ>>, <<ㅊ>>을 소리의 세기에
따라 추가하였지요.

<<ㅇ>> 역시 입모양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초기에는
<<ㅇ>> <<ᇰ>> <<ᅙ>> <<ㅎ>>으로 구분하여 입소리
글자를 표기하였지요. 현재는 <<ㅇ>>과 <<ㅎ>>을 쓰지요.

모음은 소리를 표기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사상인
하늘 <<.>> 땅<<ㅡ>> 사람<<ㅣ>>을 조합하여 소리를 표기하였습니다.
모음을 정할 때도 다양한 기준을 통해서 현재의 모음을 제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ㅓ>>와 <<ㅏ>>를 비교하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ㅓ>>는 입 앞에서 소리가 나고 <<ㅏ>>는 입안 뒤에서 소리가 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인류 역사상 사용하던 문자가 불편하다고
최고의 학자들과 임금이 힘을 합해 문자를 새로 만든 사건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터키는 아랍문자가 복잡하다고 로마자로
변경을 했고, 베트남은 로마자로 자기들의 음을 적기 시작한
사건은 있지만 이미 한문이라는 문자가 있는데도 불편하고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새로운 문자를 제정하는 건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로마자(알파벳)도 페니키아 인들이 쓰던 문자가
변형되어 로마인들이 쓰던 것을 유럽 각 국가가 차용하여 나름대로
쓰고 있습니다. 영국도 프랑스, 독일도 자신들의 고유한 문자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편하고 쉽게 문자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은
집현전 학자들과 세종대왕의 피나는 노력과 그 결실이 있어서
입니다. 문틀을 보고 만들었다는 한글 이야기는 어쩌면
한글을 폄하하려던 사람들이 지어낸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다.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님의 답변
03.10.01 09:30
답변공감
답변 내용
한글을 비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지요.

한글은 발음하는 입모양과 구강구조의 모양을 보고 만들어진 과학적인 글자입니다.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님의 답변
03.10.01 09:31
답변공감
답변 내용

세종대왕 혼자서 만든것도 아니고요.

..들판에서 한참 뛰어 놀던 나이에 세종대왕이 화장실에 앉아 있다가

눈 앞에 보이는 문창살 보고 만들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아닐것 같아요..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님의 답변
03.10.01 09:33
답변공감
답변 내용
맞고요.....

문창살속에 자모음의 형상이 다 들어있다네요.....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비공개
님의 답변
03.10.01 09:44
답변공감
답변 내용
구강 구조를 보고 만들었습니다.
한글 자음 기본자는 ㄱ, ㄴ, ㅅ, ㅁ, ㅇ 입니다.

ㄱ 을 잘 보십시오. 고등학교 때 ㄱ이 연구개음이라는 것을 배운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ㄱ은 혀뿌리가 입천장 뒷쪽에 닿은 모습을 본딴 글자입니다.
ㄴ은 혀의 앞쪽이 앞니 뒷쪽에 닿은 모습을 본뜬 것이고,
마찰음 ㅅ은 이의 모습을 본딴 글자입니다.
ㅁ은 입술소리죠. 양 입술이 맞닿아야 나는 소리인데요 입을 뜻하는 ㅁ(입 구)의 모양을 땄습니다.
목구멍을 본딴 글자가 ㅇ 이고요.

이 기본 다섯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나머지 가첨자들입니다.(획을 더했다는 뜻)
ㄱ의 거센 소리에는 ㄱ에 획을 하나 더해 ㅋ
ㄴ에 획을 더해 ㄷ, ㅌ
ㅁ에 획을 더해 ㅂ, ㅍ
ㅅ에 획을 더해 ㅈ, ㅊ
ㅇ에 획을 더해 ㅎ, 여린히읗, 꼭지이응
그리고 예외적인 글자로 ㄹ과 반치음이 있지요.

모음의 경우는 천지인 삼재(ㅣ ㅡ . )를 조합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창살을 보고 만들었다는 이론이 일제시대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근거가 불명확하고, 증명되지 않아
많은 학자들이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에 대해 왈가왈부 많은 추측들을 했습니다.
이 논란이 종식된 것은 1940년 경북 의성군 어느 고가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부터입니다.
이 책으로 인해서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시기와, 제자 원리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학자들중에 훈민정음이 문창살을 보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발음기관의 형상을 본따 한글 자음의 모양을 결정하신 세종대왕의 아이디어에 탄복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비슷한 질문이 올라왔었네요. 제가 설명드린 것보다 더 자세한 답변들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kdaq.empas.com/dbdic/db_view.jsp?ps=src&num=518494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님의 답변
03.10.01 09:38
답변공감
답변 내용
전 오늘 첨들었는데... 사실인가?
사실이 아닙니다.
입모양,혀모양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문창살을 보고만들었다고 해서 위대한것이
별볼일 없는것으로 평가 되지는 않아야지요.
딴지걸어서 말하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뉴턴은 사과떨어지는것보고 만유인력발견한 것은
위대하다고 하면서 ...
그런것은 딴지좀 걸어보시지
오줌싸다가 발견했다고...
우리것도 소중한 것이야...
좋은날 되시길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님의 답변
03.10.01 09:45
답변공감
답변 내용
문 창살을 보고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한글의 우수성을 가리려는 일본인들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한글은 세종대왕과 학자들이 수없이 연구한 끝에 만들어 낸

세계의 어떤 언어보다도 진보된 형태의 언어입니다.


궁금한 것 부터 말씀드리자면 문창살을 보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말을 할 때 사람의 입과 입 속의 혀와 성대, 치아의 모양을 보고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를들어 [ㄱ]을 소리 낼 때 인간의 혀와 목구멍은 ㄱ모양으로 됩니다.(옆에서 봤을 때 그렇겠죠?)

그리고 [ㅅ]을 소리 낼 때는 반드시 치아가 있어야 되는데 이 모양은 ㅅ모양입니다.
(역시 옆에서 본 모양 입니다.)

어느날은 왕이 직접 많은 궁녀들을 모아 여러가지 소리를 내어 보게하여

입을 자세히 관찰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답변
님의 답변
05.02.14 18:50
답변공감
답변 내용

문창살을 보고 만드셨다는 것은 말도 않될 이야기 입니다. 왜냐면 이미 한글의 원형문자가 그 전에 있었거든요. 다시말해 이미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이전에 한글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체계가 성문화되어 있거나 한반도의 언어로써 확정되지 못하였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중국한자를 빌어 한글을 쓰는 이두문이란 방법을 쓴다던지 아니면 체계화 되지 않은 고문자를 사용하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종께서는 백성이 말할때 사용하는 그 언어의 체계를 고문자를 바탕으로 정리하시어 성문화하시고, 이를 백성에게 "한반도 문자로써 인정하노라 널리쓰라" 이렇게 인정하신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 KBS역사스페셜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1999.10.9 방영)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의 4대 임금이었던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남몰래 자식들과 더불어 한글을 연구한 지 10여 년 만에 마침내 28자의 정음을 창제하였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한글창제는 세종대왕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재위25년(1443년)에 전격적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당시 집현전의 실질적인 책임자였던 최만리 등 일곱 명의 노장학자들은 반대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등의 소장학자들과 더불어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과 동국정운(1447년) 등 한글관련 서적의 편찬사업을 계속 추진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아무 불편없이 언어와 문자를 활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군주로서의 의지가 확고하였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한글이 100% 세종대왕이 생각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일까? 그렇진 않다. 이 세상의 어느것도 과거없이 현재가 존재하지 않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란 없다.

훈민정음 이전에 이미 한글의 원형 글자가 있었다 정작 한글을 창제한 당사자인 세종대왕은 솔직히 “옛 글자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또 위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신경준이 지은 <훈민정음 운해>(1750년)에는 우리 나라에는 “예로부터 사용하던 속용문자가 있었다”고 하였으니, 한문 외에도 민간에서 사용되던 문자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백성을 위해서 언어를 연구했던 세종대왕이 세간에서 사용되던 이런 문자들를 참고하였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된다. 이는 최만리의 반대상소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자 사용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양반계급에 속한 최만리는 언문을 왜 새로 만드냐며, 하물며 옛 글자와 똑같은 것을 왜 다시 만들 필요가 있냐고 세종대왕에게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우리 민족에게는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부터 옛 글자가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옛글’이나 ‘속용문자’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제는 우리 민족의 고대사와 서로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에 대단히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4000여년 전 단군시대의 가림토 문자
그럼 여기서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28자)과 단군조선시대의 문자로 알려져 있는 가림토 문자(38자)를 비교해보자. 모음이나 자음의 모양이 두루 비슷하다. 외형적으로 보더라도 가림토 문자는 가히 한글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발음의 원리는 따로 만들었으나 글자는 옛글을 본떴다’고 한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말이 실감나지 않는가. 실제로 가림토 문자의 38자 중에서 10자를 빼면 훈민정음 28자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이는 『만화 환단고기』(북캠프 2003년) 제3권에서도 잘 나와 있는데, 그 요지는 『한경대전』(임균택 저, 충효예출판사 2001년)이라는 책에 의하면,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 『징심록』의 가람토문에서 취해졌다”고 한 것이다. 가림토 문자는 『환단고기』의 「단군세기」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4184년전 단군시대 때, 제3세 단군이었던 가륵단군께서 BC2181년에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고 이를 ‘가림토’라 불렀다고 하였다(이에 대해서는 「단군세기」 와 『단기고사』의 기록이 동일하다). 한글과 가림토 문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민족사학자의 글 및 언론과 방송에서도 방영된 바 있다(1996년 한글날에 방영된 Q채널의 「한글, 그 비밀의 문」도 그중의 하나). 학자에 따라서는, 가림토 문자 38자 중에 X, M, P, H 및 I, O 등 알파벳과 유사한 글자에 주목하기도 한다(참고로 알파벳의 역사는 3000년이다). 그밖에도 중국의 갑골문자와 일본의 초기 신대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등이 단군시대 가림토 문자와 유사하다는 학설 등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참고로 알타이어의 사용범위는 터키, 몽고, 티벳, 만주 퉁구스어, 한국어, 일본어 등이다).


6000여년 전 배달국 환웅시대의 녹도문자
한가지 더 소개할 것은 단군조선 이전 배달국 환웅시대의 녹도문에 대한 것이다. 배달국은 BC3898년에 건국되어 18명의 환웅천황이 1565년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한다. 그런데 『환단고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제3」을 보면, 초대환웅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지 혁덕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힌트를 얻어 궁구한 끝에,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또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제5」의 기록을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鹿圖:사슴의 발자국 모양)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케 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당시에 녹도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제3세 가륵단군 시대보다 1500년 이상 앞선 초대 환웅시대에 이미 문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님의 백성사랑하심과 백성을 위해 혼자 생각하셔서 글자의 체계를 성문화할 수 있는 근간을 만드시고 비밀프로젝트까지 진행하시어 백성이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신 것에는 의의가 없으나, 다만 세종대왕께서 생각하신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혼자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과 한반도에서 내려온 글자의 체계를 성문화하여 널리 반포하신 것이라는 점 입니다. 세종대왕께서 학자라고 가정한다면 세종의 연구업적은 기존의 체계없이 내려온 원형글자를 체계로써 성문화하고 한반도의 문자로써 반포하시어 한반도의 고문자에 근간한 한글을 실제 언어화시켰다는 것이지 문자체계 자체를 만드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말하실 때는 세종과 함께 하신 한반도 조상님들의 똑똑함과 위대함도 함께 생각하셔야 겠죠?
 
KBS역사스페셜은 한글의 역사만 죽어라 연구하신 역사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그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제작이 된다는 점입니다. 참 훌륭한 좋은 프로였죠.

관련 그림 :
http://www.greatopen.net/spec/res/200310han_01.gif
http://www.greatopen.net/spec/res/200310han_02.gif
http://www.greatopen.net/spec/res/200310han_03.gif
http://www.greatopen.net/spec/res/200310han_04.gif
http://www.greatopen.net/spec/res/200310han_05.gif 


 
출처 : KBS역사스페셜 정리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인사 입력 영역

답변을 채택하였습니다.
답변등록 회원님께 감사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관련 검색 검색
관련 지식이 없나요? 질문하기

친구와 함께 궁금증을 해결하세요!

로그인하면 친구 질문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네이트 로그인하기

친구에게 질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