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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민족혼과 기독교사상에 대해 알려주세요
| 07.08.08 13:36
답변 1 조회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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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

 

 

안녕하세요 ^-^

 

함석헌님의 민족혼과

 

기독교 사상에 대해 궁금합니다.

 

이해하기 쉽고, 자세한 답변 부탁드려요-

일촌 및 팬들에게 공감한 내용이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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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답변
07.08.0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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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민족혼과 기독교사상

-  박  재  순



들어 가는 말: 민족혼과 한국사상
한 민족의 혼과 삶에 바탕을 두고, 그 민족의 독특한 사유구조와 정서가 배어 있는 사상과 철학을 그 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민족의 사상은 민족의 혼과 삶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한국민족이 만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에서 주체적인 국가문화를 형성할 때는 민족의 문화와 정신, 사유와 정서가 활달하게 드러나고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패망 이후, 늦어도 발해의 멸망 이후 한민족이 중국세력에 밀려 한반도 안으로 활동영역이 위축되고 정치·문화적으로 중국세력권 속에 편입된 후부터 한민족의 사상과 문화는 수 천년 동안 중국사상과 문화의 지배와 영향 아래 있었고, 특히 지배층과 학자들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기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그러므로 한민족의 혼과 문화는 중국의 정신과 문화에 억눌리게 되었다. 한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는 사회와 역사의 밑바닥에 있는 민중의 삶과 문화를 통해서 명맥을 이어가고, 원효, 율곡과 같은 소수의 독창적인 사상가들에 의해 그 정신과 맥이 이어져 갔다고 생각된다.

19세기에 민족적인 민중종교운동(동학)을 통해서 한민족의 창조적인 사상과 정신이 분출되었으나 민족주체적인 민중종교운동은 외세와 관군에 의해 짓밟히고 그 창조적 사상은 학자들에게 외면 당했다. 특히 일제의 식민통치시기와 해방 후 군사독재시기에 일제의 식민사관과 서구문화의 지배 속에서 한국의 정신과 문화는 위축되고 유린되었다.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한국정신과 문화를 내세우기도 했으나 정보부와 군부를 앞세운 폭력적 지배 속에서 민족정기와 정신은 억눌리고, 박제화된 민속문화와 한국학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지난 100년의 민족사는 서세동점의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외세의 지배와 침탈로 얼룩진 고단한 역사였다. 1945년에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났으나 민족은 분단되고 동족살해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고, 여전히 한국민족은 외래문화와 이념의 지배 속에 있었다. 2천년 이상 중국정치와 문화의 지배를 받고, 100년 동안 서구정치와 문화의 지배를 받고, 36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한국의 민족혼과 정신은 억눌려 있었다. 일치와 동화를 지향하고, 원융합일과 무위자연을 추구하는 동양과 한국의 사유와 정서, 특히 위계와 신분의 고착된 질서에 매인 유교적 사고와 중국중심의 세계관에 매인 사유를 통해서는 억눌린 민족혼이 살아나기 어려웠고, 따라서 겨레의 얼과 혼이 살아 있는, 주체적인 한국사상과 철학이 나오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서구의 비판적 저항정신, 사민평등을 추구하는 진취적 민족주의와 영혼을 꿰뚫는 기독교신앙이 한국민족의 억눌린 민족혼을 일깨워 근대적인 민족자주운동과 사상을 형성하게 했다. 고단한 민족사 속에서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고당 조만식과 같은 빼어난 민족지도자들이 서구의 신학문과 민족정신을 결합하는 민족독립운동과 교육운동을 기독교신앙의 바탕에서 힘있게 추진했다. 도산은 일제 치하에서 민족자주독립운동을 이끈 뛰어난 지도자였고, 남강은 3.1운동을 주도한 위대한 인물이었고, 고당은 한국의 간디로서 존경받았던 민족지도자였다. 도산의 강연을 듣고 감동한 남강이 오산학교를 세웠고, 고당은 오산학교의 교장으로 일했다. 이들의 정신과 이념이 민족학교인 오산학교로 결집되었고 오산학교에서 민족혼과 기독교신앙이 결합되고 민족적인 사상과 삶이 모색되었다. 뛰어난 사상가 유영모와 소설가 이광수와 김억 등이 교사로 있었고, 민족정서를 절절하게 노래한 민족시인 김소월과 함석헌(1901-1989)이 오산학교출신이었다.

오산학교 출신으로서 오산의 교사였던 함석헌은 오산학교의 민족정신과 신앙을 따라서 해방 후 민족자주와 민주화 운동의 중심에 섰고, 민중의 마음과 삶 속에 깃든 민족혼과 서구정신(기독교신앙과 서구근대사상)을 결합하는 독창적인 사상을 펼쳤다. 한민족의 혼과 정신을 기독교신앙과 결합시킨 함석헌의 씨사상은 한국민중신학의 사상적 배경과 원리가 되었고, 종교다원주의적 신학과 대화의 선구이자 오늘의 생명사상과 생명신학을 위한 영감과 자극의 원천이 되고 있다.



1. 함석헌: 주체적, 민주적 사상가
함석헌은 한평생 외세와 독재에 저항하는 곧은 삶을 살았던 재야인사로서 역사와 사회의 바닥에 서서 한민족의 얼과 한국민중의 삶을 함께 느끼고 숨쉴 수 있었다. 그는 외세와 독재와 외래문화에 맞서 주체적인 정신과 삶을 추구했다. 함석헌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주체성에 있다. 그는 생명의 근본원리를 ‘스스로 함’으로 갈파한다: “생명의 근본원리는 스스로 함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는 정신이기 때문에 지은 그 세계도 스스로 하는 생명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가 “짜증은 종의 버릇이요, 원망은 지는 놈의 소리”라고 말한 것은 결정론적 운명론과 체념적 패배주의를 떨치고, 스스로 하는 삶의 꿋꿋함을 드러낸 것이다.

외세에 짓눌린 민족혼을 일으켜 세우려는 그의 사상의 초점은 ‘스스로 하는 나’에게 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이래 주관·객관을 구별하는 서구의 객관주의적 사고경향을 비판한다. 객관적 사물에 대한 연구, 통계 숫자의 나열이 “나 자신을 욕심에서 해방시키고 사회를 악에서 건져내는 데 무슨 효력이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인간 문제와 사회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내 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나’의 얼굴을 존중하고 바로 세우는 데서 삶과 생각을 시작한다: “거울에 비치는 네 얼굴을 보라. 그것은 백 만년 비바람과 무수한 병균과 전쟁의 칼과 화약을 뚫고 나온 그 얼굴이다.” 자기 얼굴을 존중하고 바로 세우는 것이 정치 문화적 예속과 굴종에서 벗어나 사상과 정신의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민족사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면서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몸과 마음을 닦으면서 구도자적으로 형성한 그의 사상은 관념적인 사상이 아니라 몸과 맘으로 깨달은 사상이다. 몸으로 체득한 사상은 삶과 말과 글이 하나로 뚫린 사상이다. 그의 사상은 민족의 삶 속에서,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피어난 것이다.

한글학자 허웅에 따르면 한문세대는 중국시대, 한자세대는 일본시대, 한글세대는 한국시대로서 한문·한자세대가 권위적 특권적 사고를 반영한다면 한글세대는 자유평등의 민주적 사고를 반영한다. 함석헌이 우리 말 우리 글을 깊이 파고들고 살려 쓴 것은 민중의 가슴 속에 잠긴 민족혼을 살려 내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2. 민족혼과 기독교신앙의 만남

1) 민족혼과 기독교신앙의 불도가니: 오산학교

다른 제3세계국가들에서 흔히 기독교가 식민지 종주국의 통치와 문화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진 것과는 달리, 한국 기독교는 민족주의와 결합되고 민중·해방적인 성격을 지니고 전파되었다. 사대주의적이고 반민중적이었던 조선왕조가 쇠퇴하고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하는 시기에 기독교가 유입되고 전파되었기 때문에 외래 종교인 기독교가 쉽게 민족주의와 결합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유교와 불교와 무교의 집단적인 정신세계에 묻혀 있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영혼구원은 개인을 자각시키는 매력적인 복음이었고, 기독교와 민족의 결합으로 민족자주와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함석헌은 오산학교에서 비로소 민족혼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오산학교는 그 때 “민족운동, 문화운동, 신앙운동의 산 불도가니”였고, 그 때 그 교육은 “민족주의, 인도주의, 기독교신앙이 한데 녹아든 정신교육”이었다. 함석헌에 따르면 오산학교의 정신을 이루는 세 요소는 “첫째는 청산맹호 식의 민중정신이요, 그 둘째는 자립자존의 민족정신이요, 그 셋째는 참과 사랑의 기독정신이다.”

함석헌은 오산정신의 알짬은 기독교신앙이었다고 본다. “모든 운동은 스스로 함에까지 가지 않으면 오랠 수 없는데, 스스로 함은 신앙에 의하여 혼이 깨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남강 선생도 정말 그 정신이 철저해진것은 감옥에 들어가 성경을 깊이 읽고 신앙을 얻은 후다···남강의 인격의 고갱이는 기독교신앙이고, 따라서 남강의 인격을 또 그 고갱이로 삼는 오산정신의 알짬도 거기에 있다···남강, 도산, 고당의 선생의 인격의 알짬이 기독교 신앙이고···잊어선 안 될 것은 그것이 선교사와 관계없다는 사실이다.” 오산학교는 외세의 지배나 도움 없이 자주독립정신교육을 할 수 있었다. 민족혼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탄압이 거세었던 1936년에도 오산학교의 입학식 진행은 모두 우리말이었으며 참석하신 선생님들은 거의 한복차림이었다.  함석헌의 투철한 민족정신과 기독교신앙은 오산학교에서 형성되었으며, 한국 민족운동의 큰 맥을 잇고 있다.



2) 민족혼(한얼)

(1) 한=한님

함석헌은 겨레 얼을 ‘한’ 혹은 ‘’과 직결시킨다. 함석헌에 따르면 ‘한’은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한님, 하나님’, ‘한울’(하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혹은 이 우리 정신생활의 등뼈다. 우리 사람은 한 사람이요, 우리나라는 한 나라요, 우리 문화는 한 문화다. 그리고 그것을 인격화하여 대표하는 것이 한님 곧 하나님, 환인(桓因)이다.”

한민족의 혼의 원형질인 ‘한’은 ‘크고 하나임’과 ‘밝고 환함’을 뜻한다. 춥고 어두운 중앙 아시아의 산악에서 밝고 따뜻한 땅과 밝고 따뜻한 삶을 찾아 해 뜨는 동쪽으로 수 천 년, 수 만 년 오랜 세월에 걸쳐 생명의 순례를 해 오는 동안에 ‘한’의 정신과 관념이 체득되고 체질화되었을 것이다. 주어와 객어가 분명히 구분되는 서구어에 비해서 주어와 객어의 일치와 동화의 경향을 보이는 한국어의 성격과 구조도 ‘한’의 민족적 성격과 경향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민족은 스스로를 ‘한’민족, 배달(밝은 땅=밝달)의 겨레로 일컬어 왔다. 그는 한민족이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이 한, 한님을 기독교신앙과 연결시킨다: “사실 우리 나라 사람이, 조상공경을 우상숭배라 해서 종래의 도덕을 뿌리째 흔드는 기독교를 쉬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몇 천년 동안 내려오며 민중의 가슴 속에 뿌리 박아 온 이 ‘님’ 사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함석헌은 한겨레의 정신적 고유성을 드러내는 ‘한’을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일치시키고, 이 ‘한’(하나임·하나됨)을 사상의 중심과 토대와 목적으로 놓는다. 하나님과 인간의 하나됨이 신앙의 목적이고, 인류의 하나됨이 역사의 목적이다. ‘한’을 사상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함석헌은 민족정신과 기독교신앙을 그의 사상 속에 결합시킬 수 있었다.


(2) 호랑이 민중정신
함석헌은 ‘크고 하나임’을 추구하는 한민족의 혼을 ‘백두산 호랑이’로 나타낸다. 그는 한민족의 민중정신이 호랑이로 표현된 흔적을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된 곰은 “밖으로부터 온 지배자들과 결탁동화하여 한 지배계급을 이룬 부족”이고, 사람이 못됐다는 범은 “피지배 민중의 계급으로 된 부족”이다. 함석헌은 이런 해석의 근거로서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한다. 첫째 우리 말에서 곰은 임금이나 신을 나타내고, 왕검성, 곰나루에서처럼 지명에 많이 나오는데, 범이나 호랑이는 지명, 사람이름, 관직이름에 나오지 않는다. 둘째 민간신앙에서는 범이 대단히 중요하다. 우리 나라 사람은 산신령을 믿었는데 산신령은 늘 호랑이와 함께 나타난다. 한국의 민화에서 호랑이가 흔히 익살스럽게 웃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도 호랑이와 민중의 친근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함석헌은 가진 것 없고 솔직한 민중이 호랑이처럼 강직하고 용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흩어진 민중은 힘없지만, 󰡐크게 하나되어󰡑 일어서는 민중은 호랑이처럼 강하고 용감하다. 󰡐크게 하나이며󰡑, 󰡐밝고 환한󰡑민족혼이 살아날 때, 한국민중은 백두산 호랑이의 기상을 드러낸다. 한국민중은 평소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우며 순해 보이지만 외적인 침입하거나 불의에 맞서 떨쳐 일어설 때는 호랑이처럼 굳세고 용맹한 모습을 보여 준다. 병자호란이나 임진왜란, 구한말 일제의 침입에 맞서 일어난 의병운동이나 동학의 갑오농민전쟁, 3·1독립운동(1919), 4·19학생혁명(1960), 박정희독재에 저항한 부마항쟁(1979), 광주민주항쟁(1985), 전두환독재에 맞선 6월 민중항쟁(1987)에서 한국민중은 호랑이의 기상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3) 착한 성격과 평화주의
함석헌이 한민족의 혼의 고갱이를 ‘착함’으로 보는 근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 다른 민족들의 건국신화들에는 흔히 정복전쟁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민족의 건국신화들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둘째, 침략전쟁을 하지 않았다. 한민족이 치른 전쟁들은 주로 방어전이었다.
셋째, 사람 이름들에는 한민족의 뜻이 담겨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어질고 착한 성품이 드러나 있다.

옛날 중국사람들도 한민족을 착한 백성으로 높게 평가했다. 예기(禮記) 왕제편(王制篇)에서는 서융(西戎), 남만(南彎), 북적(北狄)을 비난하면서, 동이(東夷)는 “어질어서 만물을 살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또 山海經은 “동방에 군자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함석헌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민족의 정신과 혼은 쫄아들었다. “삼국시대를 경계선으로 민족성이 변경되었다. 착하고 너그럽고 곧고 굳고 날쌔고 의젓하던 정신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그는 한민족의 어진 성격은 역사의 밑바닥에, 민중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보았다. 함석헌은 착함을 사람, 우주, 하나님의 본성으로 보고, 착한 한민족을 “우주 공도(公道)에 합한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으로 본다. 착한 성격은 한민족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함석헌에 따르면 자연환경의 아름다움과 ‘한’을 추구하는 민족정신이 만나서 신선사상과 평화주의가 나왔다. 자연(하나님, 영원)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민족정신이 도통과 초탈을 추구하는 신선사상으로, ‘한’을 추구하는 착한 마음이 함께 살려는 평화주의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통과 초탈을 추구하는 자연친화적인 신선사상은 적을 포용하고 더불어 사는 평화주의와 맞물려 있다.



3) 민족혼과 기독교신앙의 만남: 주체적인 사상
함석헌은 민족학교인 오산에서 10년 동안 가르치면서 폭넓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민족, 신앙, 과학을 결코 버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의 삶과 사상은 민족혼과 기독교신앙과 과학정신을 추구하는 데서 성립되었다. 함석헌은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사상가이다. 우리의 몸과 나라의 땅이 하나임을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의 흙을 먹고 그 물을 마시고 그 바람을 숨쉬고 그 해빛을 받고 그 풀, 그 나무를 다 자료로 삼아서 피로 되고 살로 되고 뼈로 되고 신경으로 된 것이 이 가슴 아닌가? 이 강산이 살아난 것, 생명화·정신화한 것이 이 가슴이다···그러므로 몸과 나라가 서로 딴 것이 아니다. 내 몸이 곧 살아 있는 나라고, 나라 땅이 곧 내 몸이다.”

그는 오늘 살아 있는 민중의 가슴 속에 민족의 얼과 정신이 숨겨져 있다고 보았다. 이 땅의 씨들인 민중들은 수 천 년, 수 만 년 고난과 시련의 역사를 거치면서 속으로 다져진 엄청난 생명에너지를 속에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민중의 본바탕을 밝혀 내기만 하면 큰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민족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혼(얼)을 함석헌은 어떻게 살려 내는가? 함석헌은 한민족의 정신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한다. 한민족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한민족은 천인합일, 원융합일의 도통과 초탈을 추구하고, 집단적 음주가무와 집단적 영체험을 통해 감정적인 몰아상태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문제와 본질을 깊이 파고드는 힘,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파고드는 심각성이 부족한 것을 유목 몽고민족의 통폐라고 한다. 그에게서 민족혼을 살려내는 길은 세 가지다. 영혼을 쇄신하는 믿음, 깊이 파고드는 생각, 세계평화를 위해 십자가를 지는 실천을 통해서이다.


(1) ‘나’와 예수의 일치
민족혼이 바로 서려면 인격이 바로 서야 하고 인격이 바로 서려면 바로 믿어야 한다. 함석헌은 믿음의 대상인 예수와 믿는 ‘나’의 일치를 말한다. 함석헌은 <흰 손>이라는 詩에서 예수의 피가 믿는 사람의 피 속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네 만일 그 피 마셨다면이야,
(왜, 내 살 먹어라, 내 피 마셔라 않더냐?)
그러면야 지금 그 피 네 피 속에 있을 것 아니냐?
네 살에, 뼈에, 혼에, 얼에 뱄을 것 아니냐?”

함석헌에게 예수는 2천 년 전에 죽은 예수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오늘 나의 삶, 나의 몸과 뼈와 살 속에, 나의 피 속에’, ‘나의 얼과 혼’ 속에 살아 있는 예수다. 예수는 시·공간의 거리를 넘어서, ‘믿는 나’의 민족혼과 일치된다. 예수와 ‘믿는 나’ 사이에 해석학적인 이론과 사변이 끼어 드는 것을 함석헌은 허락하지 않는다. 함석헌에게서 예수는 우리의 삶과 역사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집단적 인격이다. 그래서 그는 민주화를 위해 고난받는 한국민들 속에서 예수가 태어난다고 말한다: “한국민이 사람의 아들 예수를 잉태했어요. 새 시대를 잉태했어요. 그 아기가 막 태어나려고 진통하고 있고 그래서 고통이 따르고···이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야 하지요.”

고난받는 인간들 속에서 태어나는 ‘예수’는 역사 속에서 완성되는 하나님을 상징할 뿐 아니라 새 시대, 새 공동체를 상징한다. 하나님을 미완성으로 보는 신관이 역사의 고난 속에서 ‘예수’가 태어난다는 사상으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역사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주체적 실천을 극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가 메시아를 낳는 진통의 역사라면 우리 자신이 메시아를 낳는 주역이 된다. 함석헌에게는 예수가 문제가 아니라 ‘내’ 속에 살아 있는 민족혼을 살리는 게 문제이다. 고대기독교인들에게 물고기는 신앙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했는데, 함석헌은 민중의 본성의 바다 속에 살아 있는 혼을 우리가 잡아야 할 물고기로 본다. 우리의 “가슴 속에 꼬리치는 생명의 성어(聖魚)”(민족혼)를 잡으면 한민족은 살고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2) 생각하는 이성
민중(씨)의 자각에 의해 동적인 근대가 시작되었으며, 이제 의식적으로 민중이 역사의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함석헌은 강조한다. 지배엘리트들이 민족사를 왜곡하여 기록한 역사책들은 민중의 역사적 자각을 방해한다. 함석헌은 낡은 역사책들을 불살러 버리고 참된 역사가 새겨진 민중의 혼과 삶을 파헤치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민족혼이 숨겨져 있는 민중의 가슴 속이 역사창조의 자리, 새 역사가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또한 그 자리가 “우주의 중심이요, 거기가 과거와 미래가 다 내다 뵈는 점이요, 거기가 시(時)·공(空)이 한데 맞닿는 원추의 정점이요, 거기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민중이 역사에서 주인노릇을 하려면 역사의 뜻을 깨달아야 하는데, 역사의 뜻을 깨닫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로 꿰뚫어 보는 것이다. 역사를 꿰뚫어 보려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생각함으로써 운명적인 삶에서 ‘스스로 하는’ 주체적인 삶으로 바뀐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했다.
여기서 생각은 이성적 차원을 넘어서 영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성은 본능과 영 사이에 끼어 있다. 본능은 강력한 힘으로 이성을 사로잡으려 한다. 그러나 이성의 본분은 본능의 힘에서 벗어나 영에게 봉사하는데 있다. 그리고 이성이 제 능력과 자유를 온전히 발휘할 때 비로소 이성은 영에게 봉사할 수 있다. 함석헌은 이성과 영의 이런 관계를 ‘하는 생각’과 ‘나는 생각’으로 표현한다. ‘하는 생각’은 이성적 주체적 사고를 나타내고 ‘나는 생각’은 영감(靈感:inspiration)을 나타낸다. 생각을 철저히 해야 영감이 떠오르며, 영감이 떠올라야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 영감으로서 떠오르는 ‘생각’은 ‘나와 하늘과 역사’를 하나로 꿰뚫는다. 그러므로 생각함으로써 민족혼이 살아나고, 생각하는 백성만이 역사의 주체로 살 수 있다.


(3) 십자가 신앙과 한민족의 세계적 사명
오랜 세월 동안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겪었던 한민족은 20세기에서도 36년 동안 식민지의 고통을 겪었고 강대국의 분점에 의해 민족분단과 참혹한 민족전쟁을 겪었다. 함석헌은 한민족이 남북으로 분단되고 유엔군과 인민군이 들어와 남북전쟁을 치른 것을 한민족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묘사한다. 함석헌은 십자가신앙의 원리를 한국사에 적용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한민족의 사명을 제시함으로써 실천적으로 한민족의 착하고 평화적인 성품을 적극적으로 살려내려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죽음으로써 온 인류를 구원으로 이끌듯이, 한민족도 세계사 속에서 짊어진 고난의 짐을 잘 짐으로써 세계를 평화의 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인 세계의 강대국들은 세계의 불의와 죄악을 극복하고 용서와 화해의 평화세상을 가져 올 수 없다. 피해자이며 정신적 채권자인 제3세계민족들이 불의와 죄악을 씻고 빚청산을 하고 화해하고 평화세상을 가져 올 수 있다. 세계의 불의와 죄악의 짐을 청산하려면 그 짐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죄짐을 하나님께 돌리려면 “내 속을 깊이 뚫어 하나님께 직통하는 지하도를 어서 파야 한다.” 세계의 희생양인 한국·인도·유대·흑인 이들이 “그 덮어 누르는 불의의 고난에서 이기고 나와서, 제 노릇을 하면 인류는 구원을 얻는 것”이다. 한민족이 불의한 고난을 이기고 세계평화의 길에 앞장섬으로써, 기독교의 십자가신앙의 진리가 확증된다.



3. 기독교적 한국생명사상
함석헌은 씨(씨앗)의 은유를 통해 한국적이고 기독교적인 생명사상을 펼쳤다. 자연생명세계를 상징하는 씨은 자연친화적인 한국사상을 나타내고, 죽음으로써 사는 씨의 삶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기독교사상을 나타낸다. 자연생명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씨은 민주적인 민중사상을 나타낸다.

씨은 民 또는 民衆에 대한 순수 우리 말로서 ‘맨 사람’을 뜻한다. 씨은 ‘씨’와 ‘’을 한데 붙인 말이다. 함석헌은 사회적인 지위와 치장으로 장식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나타내기 위해 씨을 은유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씨은 먼저 ‘특권없는 보통사람들’을 나타낸다. 함석헌에게서 씨은 民(people)을 나타내면서 구체적인 ‘한 사람’을 나타낸다. ‘민중·백성·국민’과 같은 말이 엄연히 있는데 함석헌이 굳이 씨이란 말을 쓰는 까닭은 두 가지이다. 첫째, 민이란 말 속에 지배·피지배의 관계, 다시 말해 봉건제도의 흔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민이 봉건시대를 표시한다면 씨은 민주주의 시대를 표시한다. 둘째 우리의 민족혼, 우리의 주체성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중국의 한자문화에 눌려 잃어버린 민족정신과 언어를 되찾기 위해 순수한 우리말인 ‘씨’을 쓰자는 것이다. 씨알을 ‘씨’로 쓰는 이유도 민의 주체성을 되찾기 위함이다. 함석헌에 의하면 “·”는 모든 모음의 기본이 되는 소리이다. 그에게 있어서 ‘씨’은 모든 삶의 밑뿌리면서도 무시를 당해 거의 잊혀졌던 민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한 하나의 심볼이다.

씨사상은 하나님(초월)과 인간(내재)의 역동적 일치에 대한 강조로 나타나고, 주체적인 민주사상으로서 ‘스스로 함’의 원리로 표현되고, 자연과 인간에 대해서 생명친화적인 공동체적인 사상으로서 ‘상생과 희생’의 원리로 나타나고, 비폭력평화사상으로 나타난다.



1) 하나님(초월)과 인간(내재)의 역동적 일치
씨 한 알 속에 우주적 생명이 응축되어 있고, 사람 속에 우주적 신적 생명이 담겨 있다. 씨은 ‘나’와 하나님의 역동적 관계, 긴장된 일치를 나타낸다. 씨이란 말 자체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에 대한 함석헌의 설명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ㅇ〉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 하늘을 표시하는 것이고, 〈〉은 극소(極小) 혹은 내재적 하늘 곧 자아(自我)를 표시하는 것이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의 표시입니다.”

함석헌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절대자가 제게서 떨어져 절대 먼 거리에 있음을 알 때 이상하게도 이미 그 절대자가 제 안에 와 있음을 또 알게 된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초월해 있으면서 내재해 있는 변증법적 존재가 아니라, 내재해 있기 때문에 초월해 있고 초월해 있기 때문에 내재해 있는 역설적 존재이다. 함석헌의 이런 하나님 이해는 디트리히 본회퍼가 하나님을 삶의 경계(바깥, 초월)이면서 중심(내재)이라고 본 것과 통한다. 이렇게 인간의 ‘나’와 역동적 관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도 역동적으로 이해된다. 함석헌에게서 하나님은 고정불변한 완전자가 아니라 절대자로서 완전한 존재인 동시에 ‘자람’이며 ‘영원의 미완성’이다. 하나님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있을 이, 영원히 있으려는 이’이다. 함석헌은 하나님의 역동성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을 “···려 함”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이 역동적으로 일치되는 자리는 어디인가? 함석헌에게서 ‘나’와 ‘하나님’이 역동적으로 하나되는 자리는 ‘마음’에 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에로 가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 신앙의 주체와 신앙의 대상 사이에 분열이 없다. 믿음의 주체(나)와 대상(하나님)이 마음 속에서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믿음엔 주격도 없고, 목적격도 없으며” 오직 믿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는 믿음이 하나님이라고도 하고 마음이 곧 하나님이라고도 한다. 함석헌에 의하면 마음은 “없음(無)의 나라”이며, “버림의 나라”이다. “믿음은 빈 것이요, 정신은 없음이다.” 없음과 버림, 즉 모든 것에 대한 순수한 부정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유에 이른다. 이 자유는 내면적 자유로 그치지 않고 실천에로 이어진다. 진정한 버림, 진정한 자유는 ‘나’ 자신의 존재마저도 하나님을 위한 ‘행동’ 속에 던져 버릴 때 성취된다.

서구(기독교)사상이 주체와 객체의 구분을 명확히 하면서 객관적인 대상(믿음의 대상)에 집중했다면, 함석헌은 주체적인 정신(마음) 속에서 ‘없음’과 ‘버림’을 통해 실천적인 삶의 자유에 도달했다. ‘없음’과 ‘버림’의 자리에서는 교리적인 한계와 종파적인 경계가 있을 수 없다. 이로써 함석헌에게서는 교리적인 한계와 종파적인 경계는 제거되고 모든 종교사상이 하나로 통할 수 있는 종교관에 이르렀다. 기독교의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울타리를 벗어나 도덕적인 종교사상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종합적인 종교사상이 수립되었다.

그러면 사람과 하나님의 역동적 일치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사람과 하나님의 역동적 일치는 사람 안에서 하늘과 땅의 우주적 공명과 감응으로 나타난다. 땅에서 피어난 씨이 우주적 생명과 감응하고 통하듯이,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은 하나님(하늘)과 감응하고 통한다. 사람이란 하늘과 땅 사이에 곧게 서서 “하늘 땅을 연락시키잔 것이다.” 함석헌은 하늘과 땅이 사람 안에서 울리고 통함을 이렇게 말한다: “땅의 힘이 내 발로 올라와 머리를 통해 저 까만 하늘에 뻗는다 하는 마음으로 서야 한다. 그래 1만 5천리 지구 중심까지 울림이 내려가도록 힘있게 서자는 것이다.”
사람 안에서 땅과 하늘의 일치를 말하는 함석헌의 사고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과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정신과 통하며,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人中天地一)는 민족종교경전인 천부경의 인본·인존의 사상과도 통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짓고 하나님의 숨을 불어 넣어 살게 했다는 성서의 이야기와도 통한다.



2) 민주사상: “스스로 함”

(1) 삶의 본질: 스스로 함

씨사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스스로 함’이다. ‘스스로 함’은 대자연의 생명의 원리일 뿐 아니라 인간과 역사의 근본원리이고 신앙과 종교의 원리이다. 그는 인간뿐 아니라 하나님도 ‘스스로 하는 정신’으로 파악한다. 그에게서 ‘스스로 함’은 자연과 인간과 역사와 하나님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원리이고 삶과 사상을 통합하는 원리이다.함석헌은 스스로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변화와 생성의 힘을 생명력, 또는 기(氣)라고 한다. 이 기(또는 생명력)가 개체적 존재의 핵심일 뿐 아니라 역사와 삶의 핵심이다. 이 기는 역사와 삶의 혁신을 끊임없이 추진하는 힘이다. 역사와 삶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이며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직선운동은 아니다. 짧게 보면 “사정없이 올라만 가는” 뛰쳐나가는 직선운동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생명의 근본에로 되돌아오는 원운동이다. 생명의 가장 높은 운동은 “창조주에게서 발사된 생명이 무한의 벽을 치고 제 나온 근본에로 돌아오는 것”이다. 근원에로 복귀하는 원운동과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직선운동의 결합은 절대와 상대, 영원과 시간, 무한과 유한, 이(理)와 기(氣)의 결합을 의미한다.



(2) 맨 사람: 역사와 우주 생명의 중심
함석헌에 따르면 하나님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 “유(有)도 무(無)도 아닌, 생(生)도 사(死)도 아닌, 선(善)도 악(惡)도 아닌 모든 것을 초월한 자리”이고, 이 절대초월의 자리를 “제 분에 따라 때에 따라 실현해 가는 것이 사람이요, 역사요, 믿음”이다. 역사 안에서는 씨(民)이 전체고 우주 안에서는 하나님이 전체다. 씨은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 흙묻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이 땅에서 현상세계에서 역사 속에서는 씨과 일치된다.함석헌은 ‘어리석고 못난’ 민중의 삶이 민족혼을 드러내고, 하나님과 직결되어 있음을 5 천 년 민족사 속에서 확인한다. “5천 년 악독한 정치에 짜 먹히고 짓밟히면서도 멍청인 듯 살아가며, 온갖 힘든 노동은 다 하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보수도 찾지 못하면서, 그저 단 하나 소망이 이 나라에 나서 이 나라에 죽어, 살아서는 힘과 생각으로, 죽어서는 살과 뼈가 거름되어 이 나라와 하나님께 봉사하는 씨이 이 ‘한’의 표현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그릇이다.”

그러므로 함석헌은 참다운 삶을 얻으려면 역사의 바닥에 있는 씨(people)에게 가야 한다고 말한다. 씨이 부드러운 흙 속에 떨어질 때 생명의 노래와 춤이 나오듯이, 인간도 역사의 바닥에 있는 씨[민중]에게 내려 올 때 생명의 기쁨과 영광, 혼의 평안에 이를 수 있다. 씨(people)을 제쳐놓고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 참된 삶에 이르는 길은 없다. 그러므로 씨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 된다. 씨을 “더럽다 하고 학대하는 자는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아프게 하는 자이다.” “씨을 받듦이 하늘나라 섬김이요, 씨을 노래함이 하나님을 찬양함이다.”

함석헌은 씨 한 사람, 한 사람을 역사의 주체이자 중심에 세운다: “너는 씨이다. 너는 앞선 영원의 총결산이요, 뒤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지나 간 5천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더 나아가 사람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다: “우주가 무한하다 하여도 그 중심은 나요, 만물이 수없이 버려져 있다 하여도 그것을 알고 쓰는 것은 나다.” 인간은 스스로 하는 나로서 주체적인 존재이면서 역사적으로나 우주적으로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존재로서 역사와 우주의 중심에 선다. 역사의 주체이고 중심인 씨의 고난과 투쟁을 통해서 역사는 진전되고 새로워진다. 그러므로 씨은 새 시대를 낳는 산모요 씨이 역사 속에서 당하는 모든 고통은 새 시대·새공동체를 낳는 진통이다.

오천 년 역사 속에서 짓눌리고 빼앗기면서도 인간 생명의 본성과 민족의 얼을 간직한 씨(민중)은 지극히 어리석은 것 같으나 지혜롭고, 못난 것 같으나 어질고, 착한 것 같으나 위대한 존재이다. 씨은 모든 지혜와 문화의 원천이다. 따라서 함석헌은 씨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씨에게 배울 것을 강조한다. 민중에게 배운다는 자세와 원칙은 7-80년대 민중선교와 민중신학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3) 생태학적 감수성과 공동체

(1) 서로 울림(共鳴)과 서로 느낌(感應)

함석헌에 따르면 믿음은 자아를 넘어서 전체의 자리에 섬이다. 전체의 자리에 서는 것은 전체의 생명과 공명하고 감응하는 것이다. 씨 하나가 흙 속에서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우주 생명 전체와 교감하고 감응하면서 창조적인 생명활동을 펼치듯이, 사람도 자기를 비우고 버림으로써 인류 전체의 생명과 서로 울리고(共鳴) 서로 느끼면서(感應), 더불어 사는 세상을 펼쳐 간다. 씨은 “서로 같이 우는(共鳴) 것, 느껴 주는(感應) 것”이다. 숨쉬지 못하면 숨막혀 죽듯이, 마음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 받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은 말라 죽는다. 서로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때, ‘맨 사람’, 씨은 전체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를 내게 된다.

씨은 우주의 생명과 물질(흙, 물, 바람, 햇빛)을 하나로 품고 끌어안음으로써 색이고 녹여서, 서로 울리고 서로 느끼면서 하나의 묘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이룬다. 전체 생명에 대한 씨의 공명과 감응, 어울림과 어우러짐은 한국전통사상의 구조와 원리 즉 묘합(妙合)·귀일(歸一)과 통한다. 삼일신고에 나타난 민족사상의 원리인 “하나를 잡아 셋(만물)을 포함하고”(執一含三)과 “셋(만물)이 어우러져 하나로 돌아간다”(會三歸一)는 것은 한국종교사상의 원리일 뿐 아니라 한국적 생명이해의 원리요, 씨의 생명원리이다. 또한 씨의 공명과 감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남’의 아픔과 약함을 짊어지는 기독교의 공동체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2) 공동체: 서로 이어진 삶
씨이 나타내는 자연생명세계에도 현상적으로는 생존경쟁과 먹이사슬의 관계가 있으나 현상적인 생존 경쟁과 먹이사슬의 바탕에는 생태학적 공존과 공생과 상생의 대조화(大調和)가 있다.  다양한 생명세계는 서로 이어져있고 서로 감응하고 공명한다. 함석헌에 따르면 “삶은 되풀이인 듯하면서도 늘 새롭고, 한없이 많은 듯하면서도 하나다.” 씨 하나 속에 나무 전체가 담겨 있듯이, 생명체 하나 속에 생명세계 전체가 표현된다. 생명체 하나하나가 전체의 나타남이다. “생명은 아무리 작고 낮아 뵈는 버러지의 것이라도 전체의 나타남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너’, ‘나’의 구별 없는 ‘하나’이다.  “생명은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을 보면 그것이 사람의 것이거나 짐승이나 버러지, 풀의 것이거나 할 것 없이, 저절로 슬퍼하고 놀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생명세계는 서로 공명하고 감응하는 ‘하나’의 세계이다. 그런데 사람은 ‘너’와 ‘나’의 분별과 대립과 적대 속에서 산다. ‘스스로 하는 생명’의 자유에 이르려면, 이런 분별과 대립의 적대관계를 넘어서야 한다. 적대관계가 지배하는 세상의 삶 속에서 적대관계를 넘어서려면 “마땅히 생사를 잊고 선악을 초월한 자리에서 권력관계를 떠나서 싸워야” 한다. 선악을 초월한 자리, 전체의 자리,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리에 설 때, 비로소 인간은 서로 울리고(共鳴), 함께 느끼고(感應), 서로 통하는 ‘하나의 생명세계’에 이를 수 있다.


(3) 아픔을 느끼는 마음
더 나아가서 우주생명세계에는 고통받는 생명의 비명이 울리고 이 울림에 감응하고 공명하는 우주적인 마음이 있다: “이 우주는 비명을 가지는 우주입니다. 비명이 있기 때문에 거기 대해 위로가 있습니다···만일 사자에게 먹히는 어린양의 비명이 없었더라면, 포수의 총알에 떨어지는 작은 새의 파득거림이 없었더라면, 십자가 위의 ‘엘리(나의 하나님), 엘리(나의 하나님)’[하나님을 향한 예수의 절규]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자에게 먹히는 어린양의 비명, 포수의 총에 떨어지는 작은 새의 파득거림이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고난과 죽음을 짊어지고 죽은 예수의 절규와 겹쳐 있다. 뭇 생명은 남의 아픔에 공명하고 감응한다.

남의 아픔에 대한 함석헌의 예민한 감수성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있다. 1964년 1월에 가난에 쫓긴 아버지가 3남매를 독살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아홉 살 난 아이가 죽기 전에 쓴 일기가 신문에 공개되었다. “아버지가 오늘도 식빵을 사왔네. 엄마는 왜 안 오나. 보고 싶네 아가가 자꾸만 울어서.” 이 글을 읽고 함석헌은 “하나님의 손가락에 찔렸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쓰는 손가락이 자꾸만 보여서 견딜 수 없읍니다···첨에는 그 손가락이 고사리 같다가 차차 커져서 낫자루만 하다가, 서까래만 하다가, 보짱만 하다가, 나중엔 앞이 캄캄합니다. 가슴 속에 쇠꼬치로 긁는 것 같습니다.’” 함석헌은 이 글을 쓴 어린이의 손은 결코 죽을 수 없다고 말한다. “봄철 첫 양기에 야들야들 피어나는 꽃 같은 그 맘씨가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늦가을 마지막 한가닥 볕을 찾아 나풀나풀하는 나비 같은, 그 호소하는 눈동자가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만일 이것이 없어졌다면 천지가 온통 허무합니다.”

남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 더불어 사는 삶의 힘이고 바탕이고, 남의 자리에 서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과 지혜를 얻는 것이 도덕과 종교의 목적이 아닐까? 함석헌이 이처럼 남의 아픔을 예민하게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것은 일치와 동화를 추구하는 한민족의 착함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4) 비폭력 평화주의

(1) 왜 비폭력 평화주의인가?
함석헌이 평생 비폭력 평화주의를 고수한 근거를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생명의 본질을 ‘스스로 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의 ‘스스로 함’뿐 아니라 ‘남’(상대)의 ‘스스로 함’을 존중하려면 폭력이나 강제가 아니라 비폭력 평화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속에 신적인 본질이 있으므로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한민족의 착한 본성을 따라서 비폭력 평화주의를 지향한다. 한민족은 착한 성품과 평화정신을 지녔고 민족사 속에서 착한 성품과 평화로운 정신이 드러났다. 3.1운동과 4.19 혁명과 같은 한민족의 중요한 해방운동은 비폭력 운동으로 나타났다. 셋째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의 평화주의를 따랐다.


(2) 비폭력 투쟁
함석헌에 의하면 삶 자체가 싸움을 요구한다. 삶의 본질은 ‘스스로 함’이고 삶의 사명은 ‘죽음과의 싸움’이다. “생명은 순간마다 사느냐, 죽느냐의 싸움이다. 영원의 위기야말로 생명의 근본 꼴이다.” 그러므로 ‘죽어도 좋다’는 체념적인 자세는 삶의 포기이고 죽음에 대한 굴복이다. “싸움은 이겨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져도 졌다 하지 않음으로 이긴다. 죽음을 죽음으로 알지 않음으로 정신이 된다.” 살아 있는 한, 삶을 위한 싸움을 멈출 수 없고, 생명의 본질을 잊지 않는 사람에게는 운명이란 없다: “운명은 자기를 잊은 자에게는 언제나 있는 것이요, 스스로 하는 자에게는 없다.”

‘스스로 함’을 실현하는 비폭력투쟁은 모든 인간에게 (상대에게도) 양심(하나님의 빛)이 있음을 전제한 싸움이다.상대가 내게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데 싸우지 않는다면 상대를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를 ‘하나님의 빛을 지닌’ 인간으로 대접하려면 싸워야 한다. 비폭력투쟁은 ‘스스로 함’을 억누르는 권력자들과의 투쟁이므로 고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투쟁은 부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극복될 때 가능하다. 함석헌에 의하면 부와 권력에 대한 숭배는 미신이다. 부와 권력(외적인 힘)에 대한 숭배는 삶의 원리(자유=스스로 함)와 상반된 것이다.

함석헌의 비폭력투쟁은 상대(적)에 대한 두려움이나 미움없이 상대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하는 싸움이다. 함석헌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생명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핀 꽃”이라고 한다. 함석헌은 원수사랑을 “서로 사랑으로 싸우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는 믿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보면 대적 자체가 없다고 했다. 비폭력투쟁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기고 짐을 초월한 마음’으로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은 이기기 위해 싸운다기보다 마음 속에서 적을 이겨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다.

대적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함석헌의 결론은 두 가지 사상적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첫째 마음에서 출발하는 동양적 종교관이 관철된 것이다. 선·악에 대한 현실적 시비(是非)판단을 떠나 마음 속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포용하려는 불교나 도교의 신앙관에서는 대적(또는 현실적 고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역사적 현실이 아니라 마음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함석헌은 ‘원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전체의식과 원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비폭력 평화주의에 이르게 된다. 둘째 잃은 양 한 마리가 잃어버리지 않은 99마리 양보다 더 소중하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관철된 것이다. 한 사람도 빼 놓지 않고 다 끌어 안는 예수의 마음 자리, 세상의 모든 죄짐을 지고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의 자리(전체의 자리)에 서면 원수 자체가 있을 수 없다. 함석헌은 악한 대적을 사랑할 뿐 아니라 대적의 악(惡)을 고맙게 여기는 데까지 이른다. 악이 ‘나’를 괴롭힘으로써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깨닫게 해 주고 하나님과 대면하도록 이끌어 준다는 것이다.


(3) 평화를 실현하는 민중에 대한 신뢰와 풀뿌리 민주주의
지난 역사 속에서 남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 엘리트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죽이고 파괴했다면, ‘스스로 하는’ 민중들은 농사짓고 건설함으로써 평화를 이루었다: “나라를 건진 사람은 사람 죽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체를 치우고 또 씨를 뿌리고 또 갈고 말이 없는 그들 이름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모든 짐을 다 지면서도 이름 앙탈도 자랑도 없는 이름 모를 사람들입니다.” 지배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면서도 씨은 지배자들이 파괴하고 더럽힌 공동체적 삶을 지탱하고 정화하는 구실을 했다. 오 천 년 민족사 속에서 평화적인 삶을 몸으로 익힌 씨은 비폭력 투쟁을 통해 민족과 인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할 저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씨에 대한 함석헌의 깊은 신뢰는 풀뿌리민주주의로 이어진다. 씨이 나라의 바탕이고 중심이다. “새 나라는 ‘나’에서 시작이다. 내(씨)가 나라다. 루이 14세는 그 말하면 죄지만, 바닥에 있는 씨이 하면 당당한 말이다.” 그러므로 씨에게 근거하지 않은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민중과의 호흡이 끊어진 순간 혁명의 힘도 끊어진다. 장자가 ‘참 사람은 발꿈치로 숨을 쉰다.’ 한 것은 이것일까? 민중이 뭐냐? 하나님의 발꿈치, 나라의 발꿈치지.”
함석헌은 개체로서의 씨과 전체를 직결시킴으로써 당파주의·집단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내’가 전체(하나님)와 직결되어 있으며, 모든 인간이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당파요 집단이다. 당파주의나 집단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의하면 실제로는 당파주의·집단주의이면서 전체를 표방하고 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게 국가주의이다. 이 국가주의가 개인과 전체를 희생시킨다.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적 당파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세계평화주의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세계는 “어쩔 수 없이 유기적인 사회, 전체사회가 돼서 미워도 고와도 한데 살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지 못하면 전체가 멸망하게 돼 있다.” 전체와 직결되어 있고, 전체를 품고 있는 씨은 평화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고 ‘하나의 세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4. 동서사상의 만남을 위하여: 하나되는 세계
함석헌은 민족혼을 실현하려 했지만 민족주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 서서 세계평화주의를 지향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문명이 주도한 지구화와 기술·생명공학의 발달로 생겨나는 혼란과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신과 영성을 지닌 새 인간이 나와야 한다. 새 인간은 동양의 명상적 종합적 사고와 서양의 분석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아우르는 인간일 것이다. 함석헌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유교와 불교와 같은 동서문명의 폐해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이 동서문화를 종합할 자격이 있음을 시사한다.

함석헌은 일원(一元)과 이원(二元), 몸과 맘, 얼과 살이 통전된 새 철학, 세계를 통일하는 세계정부, 동서문명의 통일을 꿈꾸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민족 모든 문화가 ‘한’(전체)에서 나왔고 ‘한’(전체)을 목표로 나아간다.” 더 나아가서 세계통일이 “역사발전의 등허리 뼈”다. 종교는 “몸과 마음이 하나됨···국민이 하나됨···만물과 하나님이 하나됨을 이루자는 것”이며, 나와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믿음이 “모든 통일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그 하나를 찾고, 정치는 그 하나로 나가는 길을 열고, 예술은 그 하나의 깃발을 그리고, 종교는 그 하나이다.” 그는 역사와 문화의 근본이 통일(하나됨)에 있고, 모든 통일의 근본은 종교(신앙)에 있으므로 어떤 문화도 종교로 일어났고 종교로 망했으며, 역사적 변동의 원인은 종교에 있다고 한다.

‘하나됨’을 역사, 문화, 종교의 근본으로 보고 세계통일을 지향한 것은 유일신관(Monotheism)에 기초한 기독교적 세계주의를 반영한 것일 뿐 아니라, ‘크게 하나임=한’을 추구하는 한민족의 민족혼과 원형적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일치와 동화를 추구하고 ‘한’을 추구하는 민족혼의 고유한 정신이 세계통일과 세계주의로 나가는 근거가 됨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끌어안아 하나되게 하는”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추구하는 민족혼의 원형질(‘한’)이 기독교신앙과 서구사상을 포용할 뿐 아니라 동서문명의 사상적 통일을 위한 바탕이 될 수 있음을 함석헌의 사상은 시사한다.

한국의 민족혼과 서구의 기독교사상을 결합한 함석헌의 사상 속에는 한국사상과 서구사상의 통합을 위한 단초가 마련되어 있다. 한국적인 혼으로 서구사상과 기독교정신을 소화해 낸 그의 사상은 한국사상사의 맥을 잇고 있다.함석헌 사상의 특징은 하나님(전체)과 인간(개체), 믿음(영)과 사유(이성)의 역동적인 일치와 구분에 있다. 양자는 일원론적인 일치로 끝나지도 않고 이원론적인 구분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양자는 ‘하나’라고만 할 수도 없고 ‘둘’이라고도 할 수 없다.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도 둘이다. 이것은 원효가 자신의 논리의 사유구조를 “둘을 융합하지만 하나로 되는 것은 아니다”(融二而不一)라고 밝힌 것과 같다. 이것은 이을호가 ‘크다’(전체)와 ‘하나다’(개체)의 이원적 구조가 ‘한’이라는 일원적 존재로 이해되는 한국적 사유의 성격을 묘합(妙合)이라고 갈파한 것과도 그대로 통한다. 따라서 함석헌의 생명사상은 한국적 사유의 성격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랄한 독설과 역설을 퍼 붇는 함석헌의 치열한 저항정신과 자유혼은 노장의 무위자연이나 유교의 천인합일 그리고 한국의 원융합일이나 회삼귀일과 같은 원만하고 조용한 정신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서구의 치열한 비판과 저항 정신, 기독교의 순교자적인 예언자정신이 결합됨으로써 함석헌의 격정적인 비판과 저항의 정신이 나올 수 있었다. 그가 억센 의지와 저항을 노래한 셸리의 ‘서풍의 노래’를 외우며,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한 것은 삶과 생각의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주체성을 드러내고, 지배층의 억압과 불의에 대해서 줄기차게 고발하고 진리를 증언한 것은 예언자정신을 나타낸다. 동양·한국의 천인합일적인 인본사상, 서구의 저항정신, 그리고 기독교신앙의 예언자정신이 융합됨으로써 그의 주체적인 사상은 활달하고 역동적이게 되었다.

그가 ‘스스로 함’을 강조하고 무위자연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노장(老莊)사상과 이어지고, 사람과 하나님을 직결시키고 사람(씨, 민중)을 하나님처럼 섬긴다는 점에서는 동학사상의 시천주(侍天主)와 사인여천(事人如天)과 통하고, 역사를 종말론적 미래의 자리에서 본다는 점에서는 성서적 기독교의 종말론적 역사관을 따르고, ‘생각’을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서구계몽철학의 이성적 주체에 대한 강조를 받아들이고, 꼿꼿이 일어서서 솟구쳐 오르는 생명력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베르그송과 떼이야르 샤르댕의 생명진화사상과 통한다. 포용적이고 종합적인 한국정신과 기독교의 투철한 역사의식 및 비판정신이 함석헌의 사상에서 결합되었다. 그의 사상은 매우 포용적이고 종교적 깊이(‘없음’과 ‘버림’의 자유)를 지녔으면서도 역사와 사회에 대한 투철한 책임의식과 비판정신을 가지고 있다. 한민족의 사상과 정신에 기초해서 동서의 사상적 통합을 모색하는 사람은 함석헌의 단편적이고 미완적이며 소박한 사상에서 많은 자극과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신대 강사)

  ★ 위 논문은 한국 유네스코에서 발간하는 영문 계간지 『KOREA JOURNAL』 여름 호, 2000년 특집에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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